2013. 1. 9. pm 1:52
"산책자는 징후를 예단하는 사람, 암시와 누설을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 예민한 촉수로 다가올 도시의 몰락의 결과들을 앞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또 산책자는 도시를, 거리를, 골목을 안뜰과 뒤뜰을,
가장 음침한 삶의 구석과 모퉁이를 부단히 어슬렁거리며 배회할 수 있는 사람이며,
도시의 모든 구조 및 상황까지 볼 줄 알고 파헤칠 수 있는 관상가, 고고학자, 수집가, 탐정과 같은 사람이다."*
* 그램 질로크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 <올드 파리를 걷다> 진동선 글.사진 북스코프 2010 ...
산책자와 구경꾼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순수한 산책자는 항상 자기 개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구경꾼은 외부 세계에 열광하고 도취되기 때문에 그들의 개성은 외부세계에 흡수되어 사라지고 만다.
구경거리에 정신을 빼앗긴 비인격적인 존재가 된다. 그는 군중이다.
산책자의 환상 중 하나는 얼굴에서(보행자)의 직업과 가계를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밤 생활이 확대된 탓으로 그는 쉬거나 멈추는 것은 가능하지만 잠잘 권리를 잃어버렸다.
그는 때로 여행자의 옷을 입기도 하고, 덕분에 승합마차에 오르기도 한다.
압생트를 마시며 고유한 표정을 지닌 구역을 어슬렁거리며 거리(혹은 불르바르)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그때까지도 가공되지 않은 10온스의 다이아몬드같은 순진함을 지녔던 산책자도
언젠가는 식물의 발아와 제조과정을 무관하게 보지 않을 경작자, 포도 재배자, 모직업자, 설탕제조업자, 철강업자가 된다.
산책자의 모습 속에는 이미 탐정의 모습이 예시되어 있다.
산책자는 그의 행동스타일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심한 모습이 잘 어울린다.
그러한 무심의 이면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범죄자로부터 한시라도 눈을 뗄 수 없는 감시자의 긴장된 주의력이 숨어 있다.
정원의 산보자는 더 이상 즐기면서 산책할 수가 없다.
그는 도시의 그늘 아래로 도피한다. 그는 산책자가 된다.
병상에서 갓 일어나 도시를 보며 즐거워하는 그의 주위에는 온갖 생각이 일렁인다.
삶의 싹이나 발산물이라면 무엇이든 즐겁게 호흡하며 결국 얼핏 인상만 엿보고 말았는데도
순식간에 매료된 미지의 인물을 찾아 군중을 비집고 나아간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거처를 마련하고 기뻐하며, 집 밖에 있으면서도 모든 곳에서 자기 집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획일화된 현대세계에서 그가 가야할 곳은 표면 아래 깊숙한 곳이다.
... <도시의 산책자>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08 ...
"특별한 목적 없이 오랫동안 거리를 방랑하는 사람에게 도취가 다가온다. 걷는 행위의 힘은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강해진다"
'나도.. 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문입설(程門立雪) (0) | 2013.02.03 |
---|---|
구속 拘束 (0) | 2013.01.21 |
어둠은 빛을 기다린다 (0) | 2012.12.11 |
어떤 진실 (0) | 2012.11.08 |
표현할 수 없는 언어 (0) | 2012.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