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눈뜨다

한번 온 적도 없었다는 듯이 .... 이성복

misslog@hanmail.net 2011. 1. 25. 05:45

 

 

 

 

    
아, 우리가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왔을 때, 장미는 거기에 피어 있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하루 만에 다 자랐다. 방 안에 들여놓은 호랑가시나무 화분에 흰 버섯하나. 나도 아내도 눈 동그랗게 뜨고,

딸아이는 손뼉까지 쳤다. 언제 누가 오지 말란 적 없지만, 언제 누가 오라 한 것도 아니다. 잎 전체가 가시인

호랑가시나무 아래 흰 우산 받쳐 들고, 오래 전에 우리도 그렇게 왔을 것이다, 아내와 나 사이 딸아이가 찾아

왔듯이. 언젠가 목이 메는 딸아이 앞에서 우리도 그렇게 떠날 것이다, 잎 전체가 가시인 호랑가시나무 아래

살 없는 우산을 접고, 언젠가는 한번 온 적도 없었다는 듯이

 

 

 

... 이성복 시집<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열림원 2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