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눈뜨다
연화좌蓮華坐의 가족사 .......... 하종오
misslog@hanmail.net
2011. 7. 17. 00:40
형은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책상다리를 하고서
동생한테서 한숨소리를 듣고 비웃음소리를 듣고 볼멘소리를 듣고 나서
귀가 깊어졌고
아비한테서 주정을 보고 몸부림을 보고 상처를 보고 나서
눈이 깊어졌고
어미한테 불만을 말하고 불안을 말하고 실상을 말하고 나서
입이 깊어졌을까
동생은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책상다리를 하고서
아이 적에는 아비한테서 말소리를 듣고 바람소리를 듣고 새소리를 듣고 나서
귀가 깊어졌고
소년 적에는 어미한테서 품을 보고 바람벽을 보고 창밖을 보고 나서
눈이 깊어졌고
청년 적에는 형한테 고민을 말하고 절망을 말하고 애증을 말하고 나서
입이 깊어졌을까
억지로 공부하고 스스로 사념하며
오래 책상다리를 하고 버티던 형제가
남들과 같이 듣고 보고 말하고 싶어서
벌떡, 벌떡, 방바닥에서 일어나
성큼, 성큼, 집 밖으로 걸어 나가더니
우뚝, 우뚝, 집안을 각각 일으켜 세웠으나
곡식 자루를 이고 지고 나가 팔아서
앉은뱅이책상을 사서 이고 지고 왔던 부모를 잊었고
부모는 책상다리를 한 자식들을 바라보던 나날에
한번쯤 논밭에서나 마당에서나 해보고 싶었던
책상다리를 끝끝내 하지 못하고 죽었다
... 하종오 詩 <시평> 2010. 여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