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눈뜨다

딩동 딩동, 냉동 ......... 최정란

misslog@hanmail.net 2013. 2. 3. 11:04

 

                                                            2013. 2. 1. pm 4:45

 

 

 

둔중한 추억들이 떨어져 발등을 찍는다

벨을 누르지 않아도 이따금 문이 열린다

 

너무 많은 날들을 얼렸다

숨 쉴 틈 없이 꽉꽉 채워진 뭉툭한 말들로

냉동실은 포화상태다

 

무엇이든 얼려두고 안심했다

물컹거리는 진흙의 살덩어리도

솔잎을 넣어 쪄낸 달도

토막을 낸 긴 비린내도

언제 다시 필요할지 모르니까 지금 아니어도

나중에 다시 아쉬워 질테니까

 

섬유질이 부드러운 사랑도 있었으나

가슴이 뜨거워지기 전에 냉동실로 직행한 후

언 채로 증발되었다

 

냉동정자는 잘만 얼리면, 방긋방긋,

아장아장, 아기가 되어 걸어나오기도 한다는데

내가 얼린 것들은 모두 쓰레기가 된다

 

부패를 피해 도망친 기억을 비운다

왜 냉동실에 넣는 대신

싱싱한 말, 따뜻한 말을 나눠주지 않았을까

 

발효되지 말라고 밀봉한 불안을 비운다

왜 바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지 않았을까

아무 것도 두려워 할 게 없는데

 

여행 전야, 냉동실을 비운다, 딩동

 

 

 ... 최정란 시집 <입술거울> 문학수첩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