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눈뜨다

음력 .................. 심보선

misslog@hanmail.net 2015. 7. 2. 01:06

 

                                                                                                                                                                2015. 6. 22.  pm 1:21

 

 

 

  내가 아주 슬펐을 때

  나는 발 아래서 잿빛 자갈을 발견했었지.

  나는 그때 나의 이름을 어렵게 기억해내어

  나에게 말했지.

  내일이면 괜찮아질거야.

  내일은 음력으로 모든 게 잊혀진 과거야.

 

  젊은 시절 어떤 여행길은

  목적지가 있다기보다

  서쪽으로

  그저 서족으로 가는 길이었지.

  그때 나는 노래했지.

  어제까지 돌 위에 서 있던 사람이

  오늘은 돌 아래 누워 있네.

  어제까지 돌 아래 누워 있던 사람이

  오늘은 그 옆의 또 다른 돌이 되었네. 

  내가 아주 슬펐을 때,

  나는 최대한 낮은 어조로

  서쪽의 지평선을 읽었지.

  서쪽은 음력으로 어제의 동쪽이고

  지평선은 하나의 완벽한 입체이니까.

  나는 그 때 나의 이름을 영영 잊어버리고

  미래에 펼쳐질 운명의 면적을

  달 뒷면의 운석 자국처럼

  느릿느릿 넓혀가고 있었던 거야.

 

  내가 아주 슬펐을 때

  나는 발아래서 잿빛 자갈을 발견했었지.

  그것은 음력으로

  인간의 아물지 않은 흉터이고

  그때 그대의 사랑스러운 이름은

  지상에서 반쯤 지워진 채

  화석 같은 인광으로 푸르게 빛나고 있었던 거야,

 

 

 

... 심보선 시집 < 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사,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