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 심보선
2015. 6. 22. pm 1:21
내가 아주 슬펐을 때
나는 발 아래서 잿빛 자갈을 발견했었지.
나는 그때 나의 이름을 어렵게 기억해내어
나에게 말했지.
내일이면 괜찮아질거야.
내일은 음력으로 모든 게 잊혀진 과거야.
젊은 시절 어떤 여행길은
목적지가 있다기보다
서쪽으로
그저 서족으로 가는 길이었지.
그때 나는 노래했지.
어제까지 돌 위에 서 있던 사람이
오늘은 돌 아래 누워 있네.
어제까지 돌 아래 누워 있던 사람이
오늘은 그 옆의 또 다른 돌이 되었네.
내가 아주 슬펐을 때,
나는 최대한 낮은 어조로
서쪽의 지평선을 읽었지.
서쪽은 음력으로 어제의 동쪽이고
지평선은 하나의 완벽한 입체이니까.
나는 그 때 나의 이름을 영영 잊어버리고
미래에 펼쳐질 운명의 면적을
달 뒷면의 운석 자국처럼
느릿느릿 넓혀가고 있었던 거야.
내가 아주 슬펐을 때
나는 발아래서 잿빛 자갈을 발견했었지.
그것은 음력으로
인간의 아물지 않은 흉터이고
그때 그대의 사랑스러운 이름은
지상에서 반쯤 지워진 채
화석 같은 인광으로 푸르게 빛나고 있었던 거야,
... 심보선 시집 < 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사,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