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눈뜨다

골백번 ...... 고은

misslog@hanmail.net 2011. 12. 26. 12:52

 

 

 

 

 

재회인지 몰라

희미한

아련한 어느 삶

그대와 나는 젖형제였는지 몰라

아니 누가 먼저 나온 줄 모르는 쌍둥이였는지 몰라

한 어미의 가슴

한젖으로 쥐암쥐암 자라나

그대는 앞서거니 나는 뒤서거니였는지 몰라

 

하나는 바다를 건너가고

하나는 바람과 바람 나누어지는 산기슭을 헤맸는지 몰라

헤매다가

헤매다가

어느날 오다가다 스치다가

불현듯 뒤돌아보며

어렴풋이

어렴풋이 바다 저쪽을 몰라보았는지 알아보았는지 몰라

 

그대와 나에게는

한어미의 젖냄새의 기억이 혹시나 하여

맞아

맞아

이 내음이야 하고 다시 만났는지 몰라

잠 깨어

한밤중의 무서움 같은 외로움 같은

먼 날들 지나

네 목소리 들으며

네 눈썹 보며

맞아

맞아

그대와 나는 쌍둥이였는지 몰라

젖형제였는지 몰라

 

이 세상에서의 가시버시란 그냥 속칭 암컷수컷 눌어붙는 것 아냐

오백 생의 가시버시라니

오백 생 이상의 가시버시 끄트머리라니

그보다

더 골백번 잘백번 한어미 젖 물었던

한핏줄의 원수인지 무엇인지 몰라

그러다가 설미쳐 생피붙은 것인지 몰라

그대의 나나

나의 그대나

 

아냐

몇백 생 따위 전혀 없이

이번 한번

단 한번뿐인

젖내음 따위 전혀 없이

맨 처음이자 맨 끝장 이것인지 몰라

 

 

... 고은 시집 <상화 시편> 창비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