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눈뜨다

바둑 1 , 바둑 2 ............ 백창우

misslog@hanmail.net 2014. 4. 22. 17:37

 

 

                                                                                                                                          2014. 4. 4. pm 4:24 

 

 

 

 

 

바둑 1

 

그대, 달관한 도인처럼
세상을 굽어볼 때
그대 나이 서른쯤 더 늙어보이고
그대, 철없는 아이처럼
천방지축 뛰어다닐 때
그대 나이 서른쯤 더 젊어보이고
길은 길에 이어져
수만 갈래 길
어디 한 군데 숨을 곳 없는
탁 트인 길
그대, 찾아나서려는가
묵묵히 기다리려는가
높이 오를수록 더 큰 하늘
낮게 흐를수록 더 깊은 강
그대, 도통한 은자처럼
없음의 향기 은은히 배어날 때
그대의 몸 날아오를 듯 가볍게 느껴지고
그대, 발정난 숫개처럼
욕망의 냄새 물씬 풍길 때
그대의 몸 무너질 듯 위태롭게 느껴지고

 

 

 

 

 

바둑 2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렴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쩔쩔매는 그대
아무데나 딛는다고 길은 아니겠지만
길이 없기야 하겠는가
검은 것은 검은 것의 길이고
흰 것은 흰 것의 길이 있어
시냇물이 흐르듯 그저 몸을 맞기고
흐르기만 하면 되는데
가다간 멈추고 자꾸 두리번거리는 그대
그러는 사이 어둠은 내리고, 눈은 점점 침침해지는 걸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어둠 속에 서서
몸에 흐르는 기운을 느낄 때까지
길들은 서로 만났다가는 헤어지고
헤어졌다가는 또 어딘선가 다시 만나는데
그대, 잘못 들어섰다고 절망하지 말렴
잘못 든 길 위에도 그대 그리는 별은 떠 있어
그 별에 이르는 길은 바로
그대 마음 안에 있지
마음 안에

 

 


... 백창우 시집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신어림 19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