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28. am 1:40 제주 와흘리
삶의 노래는 작게 불러야 크게 들립니다
상춧단 씻는 물이 맑아서 새들은 놀을 물고 둥지로 돌아오고
나생이 잎이 돋아 두엄향이 향기롭습니다
지은 죄도 씻고 씻으면 아카시아꽃처럼 희게 빛납니다
먹은 쌀과 쑥갓잎도 제 하나 목숨일 때
열매를 따고 뿌리를 자르는 일 죄 아니겠습니까
기차도 서지 않는 간이역 지나며
오늘도 죄 한 겹 벗어 차창 밖으로 던집니다
몸 하나가 땅이고 하늘인 사람들은
땀방울이 집이고 밥이지만
삶은 천정이 너무 높아
그들은 삶을 큰소리로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 기운 자리가 너무 커서 더 기울 수도 없는 삶을
쉰 살이라 이름 부르며 온돌 위에 눕힙니다
급히 지난 마을과 능선들은
기억 속에서는 불빛이고 잊혀지면 이슬입니다
... 이기철 시집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문학과지성사 1993년 초판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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