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눈뜨다

수문 양반 왕자지 .................. 이대흠

misslog@hanmail.net 2009. 9. 2. 18:42

 

 

 

 

 

 

 

 

예순 넘어 한글 배운 수문댁

몇 날 지나자 도로 표지판쯤은 제법 읽었는데

자응 장응 했던 것을

장흥 장흥 읽게되고

과냥 과냥 했던 것을

광양 광양 하게 되고

광주 광주 서울 서울

다 읽게 됐는데

새로 읽게 된 말이랑 이제껏 썼던 말이랑

통 달라서

말 따로 생각 따로 머릿속이 짜글짜글 했는데

자식 놈 전화 받을때도

옴마 옴마 그래부렀냐? 하다가도

부렀다와 버렸다 사이에서

가새와 가위 사이에서

혀와 쎄* 가 엉켜서 말이 굳곤 하였는데

어느 날 변소 벽에 써진 말

수문 양반 왕자지

그 말 하나는 옳게 들어왔는데

그 낙서를 본 수문댁

입이 눈꼬리로 오르며

그람 그람 우리 수문 양반

왕자거튼 사람이었제

왕자거튼 사람이었제

*쎄: '혀'의 전라도 방언

 

 

... 이대흠 <애지> 2005,겨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