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눈뜨다

텅 빈 우정 ....... 심보선

misslog@hanmail.net 2012. 9. 28. 17:21

 

 

                                                                    2012. 9. 7. am 7:10

 

 

당신이 텅 빈 공기과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손으로 쓰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손이 무한정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나는 주사위를 던지듯

당신을 향해 미소를 짓습니다.

나는 주사위를 던지듯

당신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우연에 대하여

먼 훗날 더 먼 훗날을 문득 떠올리게 될 것처럼

나는 대체로 무관심하답니다.
 
당신이 텅 빈 공기와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고백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입으로 말하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입술이 하염없이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신비로운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날.

내일은 진동과 집중이 한꺼번에 멈추는 날.

그다음 날은 침묵이 마침내 신이 되는 날.


당신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동시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처럼.
 
당신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동시에 끝날 것입니다.

 

 

 

... 심보선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사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