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래.

가난이란

misslog@hanmail.net 2008. 5. 17. 10:44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릴리 프랭키

 

가난은 비교할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눈에 띈다. 이 동네에서는 생활보호를 

받는 집이나 그렇지 않은 집이나 사회적인 지위는 달랐어도 객관적으로는 어 

느 쪽이 더 여유 있게 사는지 별반 눈에 띄지 않았다. 부자가 없으니 가난뱅이 

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쿄의 엄청난 부자처럼 유독 두드러진 존재만 없다면, 그 다음은 죄다 도토 

리 키재기 같은 것이어서 누구든 먹고 살기 힘든 정도가 아닌 한、필요한 것만 

채워지면 그리 가난하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도쿄에서는 ‘필요한것' 만 가진 자는 가난한 사람이 된다. 도쿄에서 

는 ‘필요 이상의 것'을가져야 비로소 일반적인 서민이고, ‘필요 과잉한 재물' 

을 손에 넣고서야 비로소 부유한 사람 축에 낀다. 

 

‘가난하더라도 만족하며 사는사람은 부자, 그것도 대단한 부자이다. 하지 

만 부자라도 언제 가난해질지 모른다고 겁을 내며 사는 사람은 헐벗은 겨울 같 

은 법이다.'

 

〈오셀로〉에 등장하는 이런 대사도 도쿄라는 무대에서 듣게 되면 관념적이 

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말로 다가온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그때 그동네 사람 

들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정말 그 말이 꼭 맞는다는 생각이 절절히든다. 

 

필요 이상으로 지니고 사는 도쿄 시민들은 그래도 여전히 자신이 가난하다 

고 믿어 의심치 않는데, 그 동네에서살았던사람들,아이들,계단 위에 앉아 원 

가의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스스로를'가난하다' 고 낮잡은 적이 있었던가? 돈 

이 없어서, 일자리가 없어서 고민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스스로를 '가난하다' 

고는 전혀 생각했던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가난하다는 서글픈 자조 같은 것이 그 동네에는 눈곱만큼도 떠돌 

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주머니 속에 넣어둔 100엔’은 가난하지 않지만 ‘할부로 사들인 루이비 

통지갑속의 전재산1000엔’이라면그건 슬프도록 가난하다. 

 

개발 붐을 탄 패션빌딩에 들어선 어중간한 레스토랑에 줄을 서면서까지 기 

어들어가 어중간한 식사와 어중간한 와인을 마신다. 

 

착취하는 측과 착취당하는 측, 무시무시한 승부가 명확히 색깔별로 분류되 

는 곳에서 자신의 개성이나 판단력이 함몰되고 마는 모습에 빈곤은 떠도는 것 

이다. 필요 이상으로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필요 이하로 비춰지는, 그런 도쿄 

의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가난하고 서글픈 것이다. 

 

가난’ 이란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결코 추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도쿄의 

‘볼품없는가난’은 추함을 넘어 이미 ‘더러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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