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래.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이유

misslog@hanmail.net 2010. 5. 12. 20:47

 

 

 

빤히 보이지만

잡으려고 애를 써도

언제나 원점에 서 있는 삶

 

권력도

 

 연인도

 

삶의 목표도

 

닿는 순간 저만큼 물러난다.

 

 

... <프로이트의 성과 권력> 中 권영택 지음 문예출판사 1998 ...

 

 

 머리글


    프로이트의 나르시시즘


  숲의 요정들은 아름다운 청년 나르시스를 흠모했다.

그리고 누구의 사랑도 거부하는 그의 무정함에 상처 입은 요정들은 복수의 여신을 통해 그에게 벌을  내린다.

어느 날 한적한 호숫가에서 나르시스는 물위에 비친 아름다운 청년에게 반해 그를  잡으려 한다.

그러나 손끝이 닿으면 물빛은 흐려지고 대상은 사라졌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던 그의 가슴이 슬픔으로 가득 차 올랐으나 물 위로 흩어지는 눈물방울은 물 속의 연인을 도망가게만 할 뿐이었다.

빤히 그를 바라보면서도 잡으려면 도망치는 연인 때문에 나르시스는 마음이 황폐해지고  메말라 물 속에 빠져 죽고 만다.
  요정들의 복수는 끝났다.

그러나 나르시스의 죽음은 올림포스 산 아래 살고 있는 후세 사람들에게 영원히 그리고 가장 많이 말해지는 위대한 전설을  낳는다.

그토록 보편적인 인간의 비극을 온몸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이유를 그는 말해준다.

빤히 보이지만 잡으려고 애를 써도 언제나 원점에 서 있는 삶.  권력도 연인도 삶의 목표도 닿는 순간 저만큼 물러난다.

죽는 순간까지 목표를 세우고 사랑을 얻으려 하지만 마침내 죽음이 찾아오면 허무 속에서 그는 말한다. 

이것이 그 많은 유혹들의 끝인가? 그래서 이 삶에 긴 이별을 고하면서 또 다른 삶을 믿는다.
  어떻게 그 단순한 나르시스 신화가 우리 삶의 가장 깊은 진실을 말해주는가?

철학도 예술도 대상의 신비를 그려내지만 정신분석은 가장 선명하게 이것을 설명해준다.

나르시스의 비극은 어디에서 오는가?

물위에 비친 제 모습을 타인인 줄  알고 사랑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바탕으로 삼아 신경증을 치료하고 예술작품을 분석하고 사회와 문명을 비판했다.

흔히 우리는 프로이트 사상의 근원을 오이디푸스신화에서 찾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보다 더 근원적인 곳에 나르시시즘이 자리잡고 있다.

나르시시즘이야말로 그의 리비도요, 에로스요, 어머니요, 쾌감원칙이고 무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