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래.

추억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져야

misslog@hanmail.net 2008. 11. 23. 11:01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시들,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을 보아야 한다. 동물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껴야하며,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에 몸짓을 알아야 한다. 시인을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알지 못하는 지역의 길, 뜻밖의 만남, 오랫동안 다가오는 것을 지켜본 이별,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유년시절의 우리를 기쁘게 해주려 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기분을 언짢게 해드린 부모님(다른 사람이라면 기뻐했을 텐데..), 심각하고 커다란 변화로 인해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질병, 조용하고도 한적한 방에서 보낸 나날들, 바닷가에서의 아침, 그리고 바다 그 자체, 곳곳의 바다들, 하늘높이 소리 내며 모든 별들과 더불어 흩날려간 여행의 밤들, 이 모든 것을 돌이켜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나같이 다른, 사랑을 주고받는 수많은 밤들, 진통하는 임산부의 외침, 가벼운 흰 옷을 입고 자는 동안 자궁이 닫혀져 가는 임산부들의 추억도 있어야 한다. 또 임종하는 사람들의 곁에도 있어봐야 하고, 창문이 열리고 간헐적으로 외부의 소음이 들려오는 방에서 시체 옆에도 앉아보아야 한다. 그러나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추억이 많다면 그것을 잊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추억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추억 그 자체만으로는 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추억이 우리들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도 없이 우리들 자신과 구별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몹시 드문 시간에 시의 첫 마디가 그 추억 가운데에서 머리를 들고 일어서나오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릴케의 산문 <말테의 수기> 중에서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