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nis Grzetic 作
누구든 떠나는 순간이 되면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뒤를 돌아보면서 거꾸로 매달려 있던 자신과,
가능하다면 한동안 품고 살았던 정신의 부산함을 그 자리에 걸어두고 떠나려 한다.
그래서 돌아본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 되고 수심 깊디깊은 강을 건너는 일처럼 시작하지 말아야 했을 일이 돼버린다.
나에겐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일이 되었지만,
동유럽의 한 사진작가의 작업이 고스란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작가는 '이사 가고 난 후의 집'을 인화지에 옮기는 작업을 몇 년에 걸쳐 하고 있던 작가로
그의 작품엔 이사를 떠난 직후의 휑한, 빈방들이 등장한다.
텅 빈 침실의 바닥에 사정없이 뒹구는 먼지들, 못, 머리카락들이 보이고
미처 뜯어가지 못해 바람에 흔들리는 야릇한 색감의 커튼,
엄마가 아이 몰래 던지고 갔을 법한 솔기가 터져 솜이 빠져나오는 곰 인형,
이런 이미지들을 통해 살아있는 것이 뒤척이는 소리를,
이사에도 적당한 고통이 따른다는 감상적 사실을,
가구를 죄다 들어낸 바닥에 긁힌 상흔들까지도 들여다보게했던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이 매혹적일 수 있었던 건 역시 '돌아봄'때문이었다.
이사를 마친 텅 빈 공간을 낮은 앵글로 돌아본다.
가슴 한가운데가 자꾸 허물어져 내리는 기분 때문에 그냥 그 텅 빈 공간 안으로 걸어들어가 살림을 차리고 싶은 충동,
그랬다, 그런 매혹을 그 사진은 담고 있었다.
발걸음을 멈춰 서서 자주 뒤를 돌아다본다.
그건 내가 앞을 향하면서 봤던 풍경들하고 전혀 다른 느낌을 풍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지나온 것이 저거였구나 하는 단순한 문제를 뛰어넘는다.
아예 멈춰 선 채로 멍해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는 일도 생겨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뒤돌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냥 뒤로 묻힐 뿐인 것이 돼버린다.
아예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다.
내가 뒤척이지 않으면,
나를 뒤집어놓지 않으면
삶의 다른 국면은 나에게 찾아와주지 않는다.
어쩌면 중요한 것들 모두는 뒤에 있는지도 모른다.
... 이병률 산문집 <끌림> #048 뒤 랜덤하우스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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