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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있다. |
| 새벽 잠에서부터 빗소리를 들으며 |
| 나는 그때부터 마음이 잔잔해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
| 참으로 오래된 일이지만 비가 내리는 날은 |
| 더욱 마음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마음의 정처를 잃게 된다. |
| 빗소리를 들으며 마치 명령을 받은 사람처럼 |
|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다. |
| 어느 날인가. |
| 나는 그 불을 품고 있었다. |
| 그 불은 어떤 인간의 힘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것이었다. |
| 더구나 나의 연약하고 감상적인 자제력으로는 당치않은 일이었다. |
| 나는 묵묵히 불의 가슴을 받아들이고 |
| 그 불로써 받는 상처까지를 모두 거부치 않고 받아들였다. |
| 망설이지 않았다. |
| 한사람의 이름으로 오는 아픔과 병, |
| 그리고 그에 따른 외로움을 나는 사랑했다…. |
| 비가 내리고 있다. |
| 비가 내리는 이런 외계의 기후에,나는 왜 이리 예민한가. |
| 아침과 밤, 망연한 침묵에 묶이게 하는 놀,나뭇가지를 부러트리는 세찬 바람. |
| 나는 아직도 이런 것에 마음을 다친다. |
| 그리고 그런 상처에 대해 언제나 친근감을 느낀다. |
| 행복하고 승리감에 도도한 자세보다 패배하고 버려져 있는, |
| 그래서 사람 하나에 열정의 기도를 바치는 눈물겨움이 |
| 이제는 서투르지 않고 다감하다. |
| 어쩌면 나는 스스로 원해서 |
| 더 외롭고, 더 아프게, 더 고통스럽게 끌어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될 때가 있다. |
| 사랑도 역시 그랬다. |
| 기뻐하려 들지 않고, 소유하려 들지 않고, 기쁨 안에 불행의 일부분을 |
| 언제나 동반시키며 살려고 했다. |
| 만나는 것, 헤어지는 것, 생각하는 것, 이 모두가 두렵고, |
| 그 두려움을 알면서 나는 마치 죽음을 다하는 기분으로 |
| 사랑의 감정에 나 자신을 쏟아놓는다. |
| 죽음을 당하듯……. |
| 비가 내리고 있다. |
| 어쩌자고 비는 저렇게 내리는지. |
| 고요한 마음에 비는 많은 추억을 데리고 내게로 다가서고 있다. |
| 그리고 나를 아름답게 하고 있다. |
| 아마도 오랜 나날을, |
| 나는 그 기억들로 배 부르고 화려한 여자로 살 수 있을 것이다…. |
| 비는 그치지 않는다. |
| 바람까지 불어 밖은 무섬증까지 느끼게 하고 있다. |
| 비, 또 비들. |
| 저 빗속에선들 어찌 그 모습이 숨어 있지 않으랴. |
| 비 하나 하나가 거센 바람을 젖히고 나에게로 오는 몇백 개의 '그'로 보이고 있다. |
| 눈을 감는다. |
| 비가 내리는 오후. |
| 나는 아름답던 추억으로 홀로 만찬을 벌이듯, 화려한 도취에 있었나 보다. |
| 미소를 짓는다. |
| 행복하다. |
| 아마도 꽤 오랫동안을 나에게 그 추억은 영혼의 밥이 되어 줄 것이다. |
| 내 삶을 배부르게 할 '밥'으로 언제나 그 추억은 쌓여 있을 것이다." |
...신달자<그래도 그를 사랑합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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