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n Jones 作
철학적인 접근방법의 장점은 심리적인 면에서 드러난다.
누가 우리에게 반대하거나 우리를 무시할 때마다 상처를 입는 대신
먼저 그 사람의 그런 행동이 정당한지 검토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비난 가운데도
오직 진실한 비난만이 우리의 자존심을 흔들어놓을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며 자학하는 습관을 버리고
그들의 의견이 과연 귀를 기울일 만한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사랑을 구하는 사람들의 정신에
존경할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다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철학적 염세주의의 중요한 모범을 보여준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묻는다.
정말로 그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할까?
우리의 자존심을 카드놀이 하는 집단에게 내맡기는 것이 분별력 있는 일일까?
이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존중한다 해도 그 존중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일까?
쇼펜하우어는 이런 식으로 묻는다.
"만일 청중이 한두 사람만 빼고는 모두 귀머거리라면
그들의 우렁찬 박수 갈채를 받는다 해서 연주가가 기분이 좋을까?"
이렇게 인간성을 통찰력 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유용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불리한 점은 이런 관점을 따를 경우 친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철학적 염세주의자였던 샹포르는 그런 문제를 넌지시 드러냈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태도로,
합리성과 진실한 마음을 갖추고,
관습이나 허영이나 격식 같은 상류사회의 소도구 없이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만 만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이렇게 결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멍청하고 허약하고 흉물스러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우리는 결국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선선히 그 가능성을 받아들였다.
"이 세상에서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는 곧이어 모든 젊은이들이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사람들을 피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해서
벗을 사귀고 싶은 욕망이 없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지 현재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냉소주의자들은
단지 불편할 정도로
기준이 높은 이상주의자들일 뿐이다.
샹포르는 이렇게 말한다.
"혼자 사는 사람을 두고 사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것은 밤에 봉디 숲에서 산책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한테
산책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철학자들은 함께 모여 연구를 한 것도 아닌데
입을 모아 외부의 인정이나 비난의 표시보다는
우리 내부의 양심을 따르라고 권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는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불안의 해법 중 지적인 염세주의에서..
... 알랭 드 보통 <불안> 이레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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